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nardo Bertolucci)는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한 이탈리아 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 중 한 명으로, 세계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철학, 정치, 예술, 성, 심리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복합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출가로 유명합니다. 베르톨루치의 작품들은 때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영화라는 예술이 얼마나 깊은 통찰과 표현력을 가질 수 있는지 증명해 왔습니다. 본문에서는 그의 영화 스타일을 중심으로 시각적 언어, 정치와 개인의 관계, 그리고 성과 정체성에 대한 접근 방식을 심층 분석합니다.
미장센과 영화적 언어의 정교함
베르톨루치 영화의 첫 번째 특징은 탁월한 시각적 연출, 즉 미장센의 정교함에 있습니다. 그는 단순한 장면 구성에 머무르지 않고, 프레임 하나하나에 상징성과 감정선을 깊이 있게 담아냅니다. 그의 영화에는 빈틈이 없습니다. 카메라의 위치, 조명, 공간의 구도, 배우의 움직임, 심지어 색감까지도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설계됩니다.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에서 보여준 자금성의 웅장한 세트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 푸이의 내면 심리와 제국의 쇠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베르톨루치는 초점이 흐르거나 이동하는 카메라 워크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시대의 흐름을 표현합니다. 롱테이크 기법은 그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았으며, 카메라가 인물 주변을 천천히 회전하거나 따라가며 그들의 내면 변화와 주변 세계를 동시에 포착합니다. 색채 역시 중요한 요소입니다. 『순응자(Il Conformista)』에서는 내색 톤과 대조되는 붉은색 조명으로 심리적 긴장과 억압된 욕망을 시각적으로 강조합니다. 『몽상가들(The Dreamers)』에서는 자연광과 실내조명을 이용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며, 젊은이들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감각적으로 그려냅니다. 그의 화면은 단순한 미학적 아름다움이 아닌, 이야기와 인물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철저한 계산 속에서 구성됩니다. 또한 그는 종종 카메라를 건축적 공간 안에 배치하여 인물들이 공간에 의해 어떻게 구속되거나 해방되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창, 문, 계단, 회랑 등의 구조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와 심리를 강화하는 메타포로 작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보는 영화’가 아니라 ‘느끼는 영화’를 만드는 그의 연출 철학의 핵심입니다.
서사 구조
베르톨루치의 영화는 늘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으며, 이는 그가 유년 시절부터 좌파 지식인 집안에서 성장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틸리오 베르톨루치 역시 시인이자 문학가로, 정치와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교육 환경 속에서 베르톨루치는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을 체화하게 되었습니다. 『순응자』는 파시즘 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주인공 마르첼로는 평범한 시민처럼 보이지만, 체제에 순응하려는 깊은 욕망과 그 속에서 비롯된 심리적 분열을 겪습니다. 베르톨루치는 이 인물을 통해 ‘정상성’에 대한 사회적 압박과 개인적 정체성 사이의 충돌을 조명합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철학적 대사와 상징적 이미지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한 감상이 아닌 ‘사유’로 이끕니다. 『1900』에서는 두 인물, 귀족 출신 알프레도와 농민 출신 올모를 통해 이탈리아 근대사의 계급투쟁을 서사화합니다. 영화는 단순한 시대극이 아닌, 계급 간의 긴장과 갈등을 인간적 관계 속에서 풀어내는 서사 실험입니다. 특히 베르톨루치는 주인공들의 우정이 이데올로기와 현실의 충돌 속에서 어떻게 파괴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섬세하게 다룹니다. 이처럼 그는 거시적인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 놓인 개인의 복잡한 감정과 정체성에 주목합니다. 이는 베르톨루치 영화의 서사가 ‘위에서 아래로’ 강요되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상승하는 구조를 가지게 만듭니다. 그의 영화는 역사와 개인, 구조와 감정, 현실과 꿈 사이의 끊임없는 교차점에서 존재하며, 관객은 이러한 다층적 메시지를 각자의 시각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도전적 접근
베르톨루치 영화의 또 하나의 핵심 키워드는 ‘성’입니다. 그는 성을 단순한 육체적 관계 이상의 상징으로 사용하여,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에 대한 탐구를 이어갑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종종 금기시된 관계나 욕망이 묘사되며,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갈등을 드러냅니다. 『몽상가들』은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세 명의 젊은이들이 육체적, 정신적, 정치적으로 얽히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아파트 안에서 영화를 보고, 토론하고, 사랑을 나누며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완벽하지 않으며, 결국 외부 세계의 변화 속에서 해체되고 맙니다. 베르톨루치는 이 관계를 통해 성적 해방과 이상주의가 현실 정치와 부딪히며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성과 권력, 동의(consent)에 대한 가장 논쟁적인 문제작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성적 묘사는 일부에서는 예술적 자유로 평가되지만, 오늘날에는 윤리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베르톨루치는 이 영화에서 감정이 결여된 육체적 관계가 어떻게 인간의 공허함과 상처를 드러낼 수 있는지를 극단적으로 묘사합니다. 또한, 『순응자』나 『1900』에서도 주인공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억압된 욕망을 사회적 체제와 연결 짓는 구조를 보여줍니다. 성은 단순한 표현의 대상이 아니라, 권력, 억압, 자아 인식 등 더 복합적인 층위의 담론으로 발전합니다. 이로 인해 베르톨루치의 영화는 때로는 불편하고, 도전적이며, 강렬한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그는 성을 통해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이 사회적 규범과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탐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자기 검열 없이 ‘나’와 ‘우리’의 경계를 성찰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자극이나 선정성을 넘어선, 영화가 던지는 진지한 질문입니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단순한 감독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시대정신과 인간 심리를 통합적으로 탐구한 철학자이자 예술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시각적 아름다움 속에 복잡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정치적 현실과 내면 심리를 동시에 꿰뚫습니다. 성과 정체성, 계급과 권력, 자유와 억압이라는 주제를 독창적으로 풀어내며, 관객에게 깊은 사유를 요구합니다. 오늘날 그의 영화는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와 가치가 더욱 또렷해지고 있습니다. 베르톨루치의 대표작을 다시 감상해 보며, 영화가 사유와 감동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