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델라티프 케시시는 튀니지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자란 감독으로, 다문화 정체성과 이민자의 시선으로 프랑스 사회를 해부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습니다. 그는 주류 프랑스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이민자 2세대의 정체성 혼란, 계급 갈등, 사랑과 욕망의 충돌을 사실적인 카메라로 담아냅니다. 특히 케시시는 단순한 이야기보다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는 ‘감정 리얼리즘’의 대가로 평가받으며, 그의 작품 세계는 유럽 리얼리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튀니지 출신이라는 배경이 그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다문화적 시선이 프랑스 사회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튀니지 이민자 출신의 성장과 정체성
압델라티프 케시시는 1960년 튀니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프랑스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남부에서 성장하며 북아프리카계 이민자로서 프랑스 사회의 차별, 경계, 편견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세계관과 영화 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는 일찍부터 사회적 경계에 위치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게 됩니다. 케시시는 영화뿐 아니라 연극과 문학에도 관심을 가졌고, 초기에는 배우로 활동하며 프랑스 예술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가 감독으로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작품은 <L'Esquive>(2003)입니다. 파리 외곽의 이민자 밀집 지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10대 청소년들의 삶과 언어, 감정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며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케시시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중심 주제로 삼습니다. 그는 ‘프랑스 안의 비프랑스’라는 이중적인 현실을 탐구하면서, 이민자 커뮤니티가 어떻게 사회에 소외되며 동시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배경은 그의 영화가 단순히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사회 구조 속에서 태어난 긴장과 모순을 상징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만듭니다. 케시시는 관객에게 이민자의 시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의 감정, 몸짓, 사랑, 갈등을 정직하게 그려내면서 관객 스스로가 그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유럽 영화계에서 매우 독창적으로 평가되며, 그의 배경이 단순한 출신지가 아닌 ‘영화적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다문화 프랑스, 그 안의 충돌과 화해
프랑스는 다문화 국가를 표방하지만, 실제 사회는 통합과 차별 사이의 모순된 구조 위에 놓여 있습니다. 케시시는 이 모순을 영화적 언어로 풀어내는 데 집중합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문화적 충돌, 세대 간 가치관 차이, 언어와 억양의 차이, 심지어 음식을 먹는 방식까지도 정체성의 일부로 등장합니다. 그는 이 모든 일상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프랑스 사회가 간과해 온 경계인들의 목소리를 드러냅니다.
<Mektoub, My Love> 시리즈는 이러한 정체성 문제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199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튀니지계 프랑스 청년의 여름, 사랑, 꿈, 불안정한 사회적 위치를 조용히 따라갑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프랑스인이지만, 외모나 이름, 억양 때문에 언제나 ‘외부인’처럼 취급받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프랑스인이라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 튀니지의 민속음악과 전통춤에 몰입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케시시는 영화 내에서 ‘이분법’을 허물고, 그 중간에 놓인 인간들을 조명합니다. 그는 관객이 단순히 동정하거나 비판하는 위치에 머물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감정적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인물의 감정에는 깊이 침투하는 카메라워크를 통해 이중적인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이러한 접근은 프랑스 영화계 내에서도 독특한 스타일로 평가받으며,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이 공존하는 유럽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프랑스 영화계에서의 위치와 다문화 리얼리즘의 유산
케시시 감독은 프랑스 영화계 내에서 ‘사회적 작가주의 감독’으로 분류됩니다. 그는 상업적인 성공보다는 작품성과 주제성에 무게를 두며, 프랑스 예술영화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새로운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프랑스 내 북아프리카계 감독 중 가장 국제적 성공을 거둔 인물로, 비백인 프랑스 감독으로서 유럽 영화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몇 안 되는 사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프랑스 영화계 내에서 ‘불편한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의 연출 방식은 배우에게 높은 감정 노동을 요구하고, 특히 여성 배우에게는 신체적 노출이 많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촬영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는 감독 개인의 윤리와 예술적 자유 사이에서 벌어지는 충돌로 해석되며, 최근 들어 그를 둘러싼 윤리적 논의는 그의 작품 평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시시는 프랑스 사회와 문화가 가지고 있는 이중적 태도 - 겉으로는 포용을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배제하는 구조 - 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영화는 이민자 정체성과 프랑스적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수많은 유럽 젊은이들에게 강한 공감과 해석의 틀을 제공합니다. 그가 개척한 다문화 리얼리즘은 오늘날 유럽 사회 내 소수자 시선을 반영하는 영화들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의 독립영화 창작자들에게도 지속적인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압델라티프 케시시는 단순히 튀니지 출신의 프랑스 감독이 아니라, 다문화 정체성을 영화 언어로 풀어낸 예술가입니다. 그는 ‘소속되지 못한 자들’의 감정, 고향과 이국 사이에서 방황하는 존재들의 복합적인 심리를 집요하게 탐색하며, 감정의 진실성과 현실의 복잡성을 동시에 담아냅니다. 그의 영화는 그저 프랑스 영화가 아니라, 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언어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 영화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