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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브로드와 유사 영화 비교 정리 (비포 선라이즈,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by bonpain 2025. 7. 1.

2024년 개봉한 영화 『어브로드』는 자신을 잃은 한 여성이 낯선 타국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해 가는 여정을 담은 감성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해외여행의 기록을 넘어, 정서적 상실과 회복, 그리고 이방인으로서의 존재론적 질문을 다루며 국내외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안겼습니다. 이 글에서는 『어브로드』와 감성적, 미학적으로 유사한 영화 세 편—『비포 선라이즈』,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의 비교를 통해 이 영화의 특성과 독창성을 더욱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Abroad

『비포 선라이즈』와 『어브로드』 – 일시적 만남, 영원한 기억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라이즈』는 1995년부터 이어진 "비포 시리즈"의 시작이자, 가장 인상적인 로드무비 로맨스 영화 중 하나로 꼽힙니다. 『어브로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짧은 시간 동안 이방인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고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그립니다. 단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제시와 셀린의 대화는 마치 시간 여행처럼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을 자극하며, 관객은 그들의 감정선에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어브로드』에서는 주인공 지수가 유럽 각지를 떠돌며 여러 사람들과 우연히 만남을 갖고, 그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들이 그녀의 삶에 작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는 『비포 선라이즈』의 구조와 유사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다릅니다. 『비포 선라이즈』가 로맨틱한 인연과 감정의 흐름에 집중한다면, 『어브로드』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데 무게를 둡니다.

또한 『비포 선라이즈』는 대부분의 장면이 대화로 구성되며 인물들의 언어가 이야기의 핵심 도구로 사용되지만, 『어브로드』는 이미지와 분위기,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 표현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여행의 경험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되는 구조이며, 특히 공간적 이동을 통해 감정이 변해가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여줍니다. 파리의 고요한 새벽, 프라하의 이른 아침 안개, 바르셀로나의 저녁노을 같은 장면은 단순한 풍경이 아닌 주인공의 감정 상태를 대변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과 『어브로드』 – 고립 속의 교감, 침묵의 언어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은 낯선 도시에서의 고립과 정체성 상실, 그리고 순간적인 공감의 힘을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이 영화는 복잡한 도쿄의 풍경을 배경으로, 미국인 배우 밥과 젊은 여성 샬롯이 만나는 이야기를 다루며, 그들이 느끼는 문화적 이방감과 내면의 공허함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어브로드』의 지수 역시 언어가 통하지 않는 도시에서 외로움과 불안함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한 고립 속에서도 자신과 대화하며 서서히 정서적 회복을 경험합니다.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이 타인과의 미묘한 연결을 통해 위로를 받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어브로드』는 자신의 내면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면서 스스로 치유하는 여정에 가깝습니다.

두 영화는 ‘침묵의 미학’을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의 상징적 장면인 호텔 복도에서의 마지막 인사처럼, 『어브로드』에도 대사 없이 오직 시선과 공간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다수 존재합니다. 지수가 오래된 책방에서 손때 묻은 시집을 발견하고 무언가에 잠긴 채 앉아 있는 장면, 카페 유리창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장면 등은 모두 감정의 파장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은 문화적 충돌과 외부 세계에 대한 낯섦을 통한 내면 탐색을 그리며, 『어브로드』는 그보다 더 일상적인 장면을 통해 정서적 공감대를 이끌어냅니다. 예컨대 마트에서 언어를 몰라 식료품을 고르지 못하는 장면, 현지인과의 단절된 소통 속에서도 미소 하나로 이어지는 유대감은 관객에게 잔잔한 울림을 줍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 『어브로드』 – 풍경과 감정의 조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이탈리아의 여름 풍경 속에서 펼쳐지는 한 소년의 첫사랑과 성장, 그리고 이별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계절감, 자연, 공간,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인물의 감정선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미장센을 보여줍니다. 이는 『어브로드』의 연출 방식과 많은 유사점을 갖습니다.

『어브로드』에서는 도시 풍경과 자연의 변화가 지수의 감정 흐름에 밀접하게 맞물려 전개됩니다. 이탈리아의 어느 작은 해안 도시에서는 밝고 따뜻한 햇빛 아래에서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고, 독일의 흐린 기차역에서는 과거의 기억이 몰려와 감정의 동요를 겪는 장면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공간과 감정의 조화는 두 영화 모두가 강조하는 중요한 연출 장치입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는 연애라는 감정 속에서 성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체성 혼란과 자기 이해의 과정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어브로드』의 지수도 마찬가지로,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장해 나갑니다. 다만 엘리오가 정적인 환경 속에서 관계 중심의 변화를 겪는다면, 지수는 다이내믹한 여행과 이동 속에서 ‘정서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며 내면의 퍼즐을 완성해 갑니다.

또한 두 영화는 시각적인 장면 구성에서도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벽난로 앞에서 눈물을 참으며 있는 엘리오의 롱테이크 장면은, 『어브로드』에서 낡은 성당 계단에 앉아 일기장을 꺼내드는 지수의 장면과 감정적으로 비슷한 맥락에 있습니다. 조용하지만 무게 있는 그 정서는 공간과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 절제된 방식으로 전달됩니다.

이러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어브로드』는 낭만적 사랑보다는 존재론적 회복을 강조하며 자기중심적 감정선에 더 집중합니다. 이 점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감정선 외부로 뻗어 나가는 이야기라면, 『어브로드』는 감정선이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어브로드』는 세 영화와 유사한 미학적 요소와 서사 구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감정 언어를 형성합니다. 이 영화는 정제된 대사와 상징적인 시각 구성, 그리고 적절히 배치된 음악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 감정을 해석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적인 예술 영화의 흐름을 따르면서도, 여행이라는 생동감 있는 소재를 통해 역동적인 감정의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이 『어브로드』만의 강점입니다.

이처럼 『비포 선라이즈』,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라는 세 편의 명작과 비교했을 때, 『어브로드』는 감성적 연출과 의미 있는 정서를 공유하지만, 동시에 고유한 시선과 해석을 통해 독립적인 정체성을 지닌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감정을 느리고 조용하게 마주하고 싶은 이들에게 『어브로드』는 깊은 공감과 긴 여운을 선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