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공개된 프랑스 영화 《슬기로운 아내 수업(La Bonne Épouse)》은 여성의 역할이 ‘현모양처’로만 강요되던 196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시대적 억압에 저항하며 스스로 삶의 방향을 찾으려는 여성들의 성장과 연대를 그린 작품입니다. 주연인 줄리엣 비노쉬의 명연기를 중심으로, 이 영화는 단순한 시대극이 아닌 현대 여성 인권과 자유의 의미를 되짚게 만드는 페미니즘 영화로 평가받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의 줄거리 요약, 여성 억압 구조에 대한 비판, 그리고 영화가 던지는 인권 메시지와 총평을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줄거리 요약: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한 교육의 민낯
영화 《슬기로운 아내 수업》은 1967년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시골 마을에 위치한 한 ‘가정주부 학교’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은 젊은 여성들을 ‘이상적인 아내’로 길러내는 교육 기관으로, 청소, 요리, 양육, 남편 복종 등 결혼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공간입니다. 학교의 교장은 ‘폴린’(줄리엣 비노쉬), 그녀는 남편 로베르와 함께 이곳을 운영하며, 젊은 학생들에게 “여자는 집안의 기둥이며, 남편을 잘 섬겨야 한다”라고 교육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로베르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으면서 폴린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습니다. 로베르가 학교 운영에 실패했으며 막대한 빚을 남기고 사망한 사실이 드러나자, 폴린은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자립적인 삶을 고민하게 됩니다. 동시에 학생들 역시 기존 교육에 회의감을 품으며,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라는 질문을 품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하는 1968년 프랑스의 5월 혁명은 영화의 배경을 정치적, 사회적 각성의 시기로 확장시킵니다. 학생들의 사회 참여, 언론의 변화, 여성 인권운동의 확산 속에서, 폴린과 학교의 다른 여성들은 ‘순종적 아내’에서 자율적 인간으로 거듭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학교 여학생들과 교사들이 전통 교육을 거부하고 직접 시위에 참여하면서 마무리됩니다. 영화는 뮤지컬 형식으로 마무리되며, 여성들의 집단적 각성과 연대, 그리고 해방의 순간을 환희처럼 그려냅니다.
여성 억압의 구조: 교육, 결혼, 사회의 삼중 억압
《슬기로운 아내 수업》은 단지 한 여학교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사회 전체가 여성에게 강요한 성 역할과 억압 구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1. 교육 시스템을 통한 억압: 이 영화의 핵심 장면은 바로 ‘아내 교육 커리큘럼’입니다. 여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남편의 셔츠는 항상 다려 있어야 한다”, “남편의 기분이 우선이다” 등 명백히 여성을 하인처럼 취급하는 교육을 받습니다. 이는 단순한 조리 실습이 아니라, 여성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을 철저히 가부장제에 예속시키는 구조적 억압입니다.
2. 결혼 제도의 억압: 영화 속 결혼은 여성의 ‘해방’이 아니라 ‘속박’입니다. 폴린조차 남편의 결정에 따르며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남편의 죽음 이후에야 자신의 이름으로 계좌도 만들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는 1960년대 프랑스의 실제 법 제도에 기반한 설정으로, 그 당시 여성은 남성의 동의 없이는 재산, 금융 활동이 불가능했습니다.
3. 사회적 분위기의 억압: 영화가 그리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매우 보수적입니다. 남편 없이도 당당한 폴린, 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여학생들을 향한 비난과 배척의 시선은 여전히 한국을 포함한 현재 사회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자유를 주장하는 여성에게 ‘창녀 같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모습은 여성 혐오의 구조화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여성 인권 영화로서의 의미와 평가
《슬기로운 아내 수업》은 겉으로 보면 코믹하고 가벼운 톤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클래식한 음악, 레트로한 의상, 군데군데 등장하는 뮤지컬 형식은 영화의 분위기를 경쾌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메시지와 주제는 매우 묵직합니다. 이 영화는 ‘좋은 아내’라는 사회적 역할이 어떻게 여성의 삶을 억압하고 왜곡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1. 자기 삶의 주체로서의 여성
영화의 전환점은 폴린이 더 이상 남편의 유산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꾸리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라 ‘여성’으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자기 결정을 시작합니다.
2. 여성 연대의 서사
영화는 개별 여성의 변화보다 여성들 간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힘을 강조합니다. 젊은 여학생들과 교사들이 함께 전통적인 교육에 반발하고, 함께 거리로 나서는 장면은 서서히 서로를 통해 각성하고 단단해진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줍니다.
3. 사회적 의미와 시사점
이 영화는 단순히 1960년대 프랑스를 보여주는 과거극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좋은 여자’, ‘현명한 아내’라는 프레임에 갇힌 여성들이 존재하며,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슬기로운 아내 수업》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비춘다는 점에서 매우 현대적인 영화이며, 관객에게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슬기로운 아내 수업》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어진 삶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대신, 그 틀을 의심하고 깨려는 여성들의 성장 서사를 통해 큰 울림을 전하는 영화입니다. 단순한 시대극을 넘어, 오늘날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사회비판적 드라마로 기능하며, 특히 여성 인권과 자유, 주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가 말하는 ‘슬기로움’이란, 순종과 희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체로 인정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혼자가 아닌,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 속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