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브레스(One Breath, 2020)’는 실존 인물인 러시아의 프리다이빙 챔피언 ‘나탈리아 몰차노바’를 모티프로 제작된 영화로, 여성의 도전과 극한의 몰입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스포츠의 극한 경계 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마주하는 과정을 심도 깊게 다루며, 단순한 운동 영화나 전기 영화 그 이상으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여성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도전 서사를 펼친다는 점에서 강렬한 울림을 전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삶의 집중과 몰입, 그리고 생명에 대한 본질적 성찰을 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본문에서는 영화의 줄거리와 실제 인물 나탈리아 몰차노바의 삶, 주요 메시지, 연출 기법, 그리고 총평까지 자세히 분석해 보겠습니다.
줄거리 : 깊이를 향한 외로운 여정
영화 ‘원 브레스’의 주인공은 독일계 러시아 여성 마리나 고르코바. 그녀는 억압적인 결혼생활과 평범한 삶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던 중, 우연히 프리다이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됩니다. 깊은 물속에서 단 한 번의 숨으로 잠수하는 프리다이빙은 그녀에게 자유와 내면의 평화를 선사하며, 서서히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습니다. 영화는 마리나가 프리다이빙이라는 극한 스포츠에 입문하게 된 배경과, 그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신체적 변화들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억눌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감히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녀의 여정은 단순한 스포츠 챌린지가 아닌 존재의 문제, 정체성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그녀는 점차 국제 대회에 출전할 만큼 실력을 쌓고, 깊은 수심의 바다로 몸을 던지며 신기록에 도전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도전은 결코 순탄치 않습니다. 호흡을 참는 고통, 수압에 의한 신체 손상, 잠수 중의 환각 증세, 그리고 주변의 냉소와 반대가 끊임없이 그녀를 시험합니다.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마리나가 생사를 넘나드는 도전을 마주하는 장면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의지를 극단까지 밀어붙입니다. 특히 마지막 다이빙 장면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바닷속에서, 주인공이 자신과 화해하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그려집니다. 이는 마치 명상처럼 느껴지며, 관객 역시 스크린 너머에서 숨을 참고 함께 잠수하는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실존 인물 ‘나탈리아 몰차노바’의 삶과 영화적 각색
‘원 브레스’는 픽션이지만, 그 바탕에는 실존 인물인 러시아의 프리다이빙 영웅 나탈리아 몰차노바(Natalia Molchanova)가 존재합니다. 그녀는 생전 41개의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여성은 물론 남성 다이버들을 포함해도 손꼽히는 세계적인 선수였습니다. 특히 그녀는 40대 중반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프리다이빙을 시작했으며, 여성의 삶에서 제2막을 시작한 인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몰차노바는 단순히 기록에 도전한 것을 넘어, 프리다이빙이라는 운동의 철학과 정신적 깊이를 강조했던 인물입니다. 그녀는 “바다는 단지 경쟁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을 마주하는 곳”이라고 말했고, 그녀의 인터뷰와 저서들은 세계 프리다이빙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2015년 훈련 중 실종되었으며, 끝내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은 그녀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바다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영화 ‘원 브레스’는 몰차노바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전기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주인공 마리나의 배경, 도전, 철학, 그리고 실종과 죽음에 대한 서사는 몰차노바의 실화를 섬세하게 녹여낸 영화적 각색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단지 영감을 받은 픽션이라기보다는, 몰차노바라는 인물을 위한 헌사와도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숨조차 멈추게 만드는 영화적 연출과 메시지
‘원 브레스’는 연출 방식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몰입의 연출’입니다. 프리다이빙 장면에서는 음악이나 대사를 최소화하고, 관객이 실제로 물속에 있는 듯한 청각적, 시각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무중력의 공간, 절대적 고요 속에서 느껴지는 심장 소리, 숨소리의 부재, 폐의 압축 — 이러한 요소들은 관객의 심박수까지 조절하게 만들며, 일종의 체험형 영화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또한 주인공의 내면 심리를 표현하는 방식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플래시백, 환상, 무의식적 이미지들이 교차되며 그녀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치유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그녀가 과거의 자신과 대면하는 장면에서는 바다라는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닌 심리적 세계로 기능함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여성의 자기 발견과 재탄생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기존의 프리다이빙 영화들이 남성 중심의 도전과 기록에 집중했다면, ‘원 브레스’는 감정과 철학, 상처의 회복에 더 집중합니다. 물속에 잠수하는 행위가 단순히 신체적 도전이 아닌, 정신적 정화를 상징하는 장치로 쓰이는 것입니다. 결국 영화는 ‘한 번의 호흡(One Breath)’으로 얼마나 깊이 내려갈 수 있는가 보다, 그 한 번의 호흡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하고 준비해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바다의 깊이는 주인공의 내면 깊이와 맞닿아 있으며, 관객은 영화가 끝날 무렵 ‘깊이 내려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곱씹게 됩니다.
총평
‘원 브레스’는 스포츠 영화와 예술 영화, 다큐멘터리적 사실성과 철학적 서사가 조화를 이룬 보기 드문 작품입니다. 특히 여성 주인공이 주체적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재정의해 나가는 과정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자극을 줍니다. 영화는 빠르거나 화려한 전개를 택하지 않습니다. 대신 느리게, 그러나 깊게 파고듭니다. 이는 프리다이빙이라는 종목 자체의 특성과도 맞닿아 있으며, 관객 또한 이 ‘느린 몰입’ 속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게 됩니다. 배우 조앤나 쿠리크의 연기도 극찬받을 만합니다. 실제 다이버 훈련을 통해 거의 모든 수중 장면을 직접 소화하며, 그녀는 마리나의 고요하지만 단단한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 냅니다. 또한 바다 촬영은 생생하면서도 시적이며, 오프닝과 클로징을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은유적으로 제시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더 깊은 수심으로 내려간 뒤, 숨을 참고 미소를 지은 채 카메라를 바라보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그 장면은 죽음을 암시하기도 하고, 혹은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해석은 관객에게 맡기지만, 영화는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합니다. ‘원 브레스’는 단지 프리다이빙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여성의 해방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넘어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영화 속 마리나를 통해, 그리고 현실의 몰차노바를 통해 ‘삶을 숨 쉬는 방식’에 대해 다시금 질문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국 우리 각자가 자신에게 던져야 할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