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탈 아케르만은 벨기에 브뤼셀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프랑스 예술영화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여성감독의 존재를 강하게 각인시킨 인물이다. 그녀는 20세기 후반 유럽 영화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작가주의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실험적인 카메라워크, 정적인 연출, 그리고 일상을 조명하는 방식 등은 아케르만 특유의 영화언어로 자리 잡았다. 특히 그녀의 작품은 페미니즘 시네마, 퀴어 시네마, 그리고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화 문법을 통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본 글에서는 샹탈 아케르만의 벨기에적 배경, 프랑스 영화계에서의 성장과 실험, 그리고 여성감독으로서의 상징성과 유산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하고자 한다.
벨기에 출신 감독의 정체성
샹탈 아케르만은 195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유대계 폴란드 이민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였으며, 이러한 가정적 배경은 아케르만의 정체성뿐 아니라 영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외부와 내부, 타자와 자아, 경계와 정체성 같은 주제에 민감했으며 이는 그녀의 영화 세계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벨기에는 프랑스어권과 플라망어권으로 나뉘는 복합적인 문화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혼종성은 아케르만이 특정 민족성이나 국가성에 고정되지 않도록 했으며, 오히려 경계를 흐리거나 넘나드는 감각을 익히게 했다. 그녀의 초기작들은 대부분 브뤼셀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도시의 풍경이나 여성의 방, 창밖을 바라보는 시선 등에서 이러한 경계 감각이 표현된다. 대표작 <Saute ma ville>(1968)은 그녀가 18세의 나이로 만든 단편으로, 여성이 부엌에서 폭발하는 이야기다. 이는 단순히 파괴적 장면이 아닌, 여성의 억압된 일상과 자율성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이 작품은 여성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을 처음으로 드러낸 작업이자, 벨기에라는 공간에서 자아를 구축해 나가는 방식의 시발점이다. 그녀는 벨기에 출신이었지만, 프랑스와 미국 등지에서 더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았다. 이는 영화산업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주변부에서 시작해 중심으로 진입한 여성 감독의 도전기이기도 하다. 샹탈 아케르만은 벨기에의 다언어적, 다문화적 특성을 자기 영화에 흡수하며, 경계를 횡단하는 작가주의 미학을 창조해 냈다.
프랑스 영화계에서의 실험과 영향
샹탈 아케르만은 프랑스 영화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특히 누벨바그 이후의 작가주의 영화 흐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녀의 1975년 장편영화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는 프랑스 비평계에서 찬사를 받으며 작가로서 확고히 자리매김하게 만든 작품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영화 문법에 도전장을 던지며, 여성의 일상을 정적인 시점으로 포착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3시간 20분 동안 주인공의 가사노동과 성매매를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반복 속에 스며든 감정의 파동을 탐색한다. 롱테이크와 정지된 카메라, 침묵과 간헐적 사운드는 아케르만만의 미학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이는 앙드레 바쟁이 제시한 영화의 리얼리즘 개념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장 뤽 고다르나 에릭 로메르 등과 다른 결을 보여주는 독자적 실험이었다. 프랑스 영화계는 이러한 급진적 실험에 개방적이었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그녀의 작품을 '시간과 여성의 새로운 시학'이라고 칭하며, 영화에서 보이지 않던 시간을 관객에게 체험하게 하는 작가로 주목했다. 이후 아케르만은 <Les Rendez-vous d'Anna>(1978), <Toute une nuit>(1982), <Là-bas>(2006) 등 다수의 작품을 프랑스에서 제작하며, 프랑스 예술영화계에서 중심적인 인물로 자리 잡는다. 프랑스 문화계에서 아케르만은 단지 감독이 아닌 사유하는 예술가로 존중받았다. 그녀는 영화 속에서 페미니즘 담론, 정체성, 이민, 역사 등의 주제를 담아내며 문화비평의 영역과도 맞닿았다. 프랑스의 페미니즘 이론가들과의 연계, 그리고 문학, 철학, 미학과의 교차점에 선 그녀의 작품은 단순히 영화 그 자체를 넘어선 문화적 실천의 장이었다.
여성감독으로서의 상징성과 유산
샹탈 아케르만은 전 세계 영화사에서 여성감독의 위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녀의 영화는 여성의 삶을 단순한 소재가 아닌,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끌어올렸다. 특히 <잔느 딜망>은 여성영화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되며, 기존 주류 영화가 보여주지 않던 여성의 시선과 리듬을 시각화했다. 아케르만은 동성애자 여성으로서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영화에 정직하게 담아냈다. <Je Tu Il Elle>(1974)에서는 여성과 여성의 성적 관계를 직접 묘사함으로써,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이 영화는 여성 간의 사랑을 단순한 감정의 교류가 아닌, 몸과 언어, 거리와 침묵, 그리고 주체의 분열로 표현한다. 이처럼 그녀의 영화는 항상 경계를 넘나들며, 주체와 타자의 관계를 재정의한다. 그녀는 영화의 서사를 해체하거나, 인물의 감정선을 최소화하면서도 관객의 내면을 흔드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여성의 내면과 외부 세계 간의 긴장을 시각화하는 독특한 방식이었으며, 이후 여성감독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 클레어 드니, 소피아 코폴라, 리네 램지, 켈리 라이카트 등 현대 여성감독들은 아케르만의 미학과 태도를 계승하고 있다. 특히 2022년에는 아케르만의 <잔느 딜망>이 영국 BFI가 발표한 '역대 최고의 영화' 순위에서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 히치콕의 <현기증>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는 단순한 영화 평가를 넘어, 영화사 내에서 여성 창작자에 대한 재평가와 인정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영화 역사 속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의 위치를 새롭게 조명한 것이다. 샹탈 아케르만의 유산은 단지 영화감독으로서의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녀는 영화, 다큐멘터리, 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여성의 삶과 예술을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언어로 표현한 예술가였다.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의 작품은 전 세계의 시네마테크, 페미니즘 연구, 영화 교육 현장에서 끊임없이 상영되고 분석되며 재해석되고 있다.
샹탈 아케르만은 단순히 유럽 예술영화계의 감독이 아닌, 여성, 퀴어, 이방인의 시선을 통해 영화사 전체를 재정의한 인물이다. 벨기에의 복잡한 정체성에서 출발하여 프랑스 영화계에서 실험을 거듭하고, 여성감독으로서 사회적, 예술적 가치를 확립한 그녀는 오늘날 영화 창작자들에게 살아있는 고전으로 존재한다. 그녀의 작품은 여전히 새로운 세대에게 질문을 던지며, 영화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