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컴플리트 언노운(Complete Unknown, 2016)’은 관객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심리 드라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미스터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아, 정체성, 삶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이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끊임없이 이름과 직업을 바꾸며 살아가는 한 여성의 삶을 따라가면서, 이 영화는 현대인의 불안과 자유에 대해 조명합니다. 잔잔하지만 의미 깊은 흐름 속에서 지금 이 시대에도 충분히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으로, 다시 볼 가치가 있는 영화입니다.
줄거리 - 정체성을 바꾸며 살아가는 여자
영화는 한 여성이 새로운 정체성으로 삶을 시작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녀는 자신을 ‘앨리스’라고 소개하지만, 이전의 이름은 ‘제니’, 그 이전엔 또 다른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번 직업도 바꾸며, 생물학자, 간호사, 보석상 점원, 환경운동가 등 다양한 삶을 살아갑니다. 마치 자신이 삶을 실험하듯, 정체성도 반복적으로 변화시키는 그녀의 삶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의 나'로 살아가야 하는가? 혹은, 다양한 나로 살아가는 것이 더 진짜일까?
앨리스는 우연히 초대받은 생일 파티에서 과거 연인이었던 톰과 재회하게 됩니다. 톰은 그녀를 '제니'로 기억하고 있으며, 그녀의 현재 모습에 충격을 받습니다. 톰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앨리스의 자유로운 방식에 혼란을 느낍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사라졌고, 왜 계속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지 설명하지만, 톰은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장면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이 충돌하며, '정체성은 고정된 것인가, 선택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영화의 중요한 전개는 두 인물이 함께 밤거리를 걷는 장면에서 벌어집니다. 그들은 우연히 한 노부부의 집에 방문하게 되며, 이들은 잠시 타인의 삶 속에 들어갑니다. 노부부와의 대화는 마치 인생의 한 장면을 응축한 듯하며, 잠시 '정체성'을 내려놓고 순수한 인간적인 순간을 마주합니다. 이 장면은 일종의 환상처럼 흘러가며, 삶의 본질에 다가가는 느낌을 줍니다.
그 후 앨리스는 자신이 곧 또 다른 삶을 시작할 것이라 말하고, 톰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톰은 끝내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일상과 안정감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현실 속에서의 변화가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며, 앨리스의 자유로운 삶이 도피인지, 혹은 진정한 선택인지를 관객에게 다시금 묻게 만듭니다.
감독 조슈아 마스톤은 변화와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잔잔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영화는 큰 사건 없이 대화와 시선, 움직임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서서히 드러냅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관객에게도 깊은 몰입감을 제공하며, 단순히 줄거리 이상의 철학적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현대인의 정체성 위기와 영화의 메시지
‘컴플리트 언노운’은 한 여성의 삶을 통해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의 유동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한 회사에 오래 다니지 않고, 직업을 바꾸며, 때로는 도시와 국가를 옮기며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앨리스는 바로 그 질문에 직접 부딪히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실험하며 살아갑니다. 매번 새로운 자아를 입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살아가면서, 스스로 삶을 만들어나갑니다.
톰과의 대비는 매우 상징적입니다. 톰은 기존의 틀 안에서 살아가며, 앨리스처럼 극단적인 변화를 감행하지 못합니다. 그는 그녀의 삶에 매혹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이는 많은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지만, 현실의 책임과 두려움에 갇혀 있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정체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관객에게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진짜 나인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만의 삶의 방향성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빠른 전개나 자극적인 사건 없이도 강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영화 감상을 넘어, 철학적 사유의 장으로 작용하며 관객 스스로 삶의 방향과 자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듭니다. 지금 이 시대, 불확실한 삶 속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변화’와 ‘정체성’에 대한 용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정체성의 무게, '앨리스'라는 인물
영화의 중심인물인 앨리스(레이철 와이즈 분)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으로,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며 새로운 이름과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가 파티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옛 연인 톰(마이클 섀넌 분)과의 재회는 영화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며, 진짜 ‘자아’란 무엇인가를 묻게 합니다.
앨리스는 정체성을 바꾸며 살아가는 자신을 '자유롭다'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이 곧 진실한 자아의 해방인지, 혹은 도피인지에 대한 질문이 영화 전반에 걸쳐 제기됩니다. 그녀는 현실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그 끝에는 다시 또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의 유동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감독 조슈아 마스톤은 매우 미니멀한 연출을 통해 이러한 내면적 고민을 강조하며, 관객에게 앨리스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직접 판단하도록 유도합니다. 카메라는 감정의 폭발보다 순간의 침묵에 더 집중하며, 정체성의 무게와 모순을 절묘하게 표현합니다.
삶을 바꾸는 '변화'라는 선택
‘변화’는 이 영화의 핵심 테마입니다. 앨리스는 단지 직장을 바꾸거나 이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바꾸는 결정을 반복합니다. 그녀는 생물학자에서 간호사, 보석상 직원에서 환경운동가까지, 수많은 삶을 살아봅니다. 이는 곧 현대인의 ‘경험 중심의 정체성’과도 연결됩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자주 삶을 바꾸고, 그때마다 새로운 정체성을 덧씌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관객에게 공감과 동시에 불안함을 줍니다. 변화는 해방이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영화는 변화라는 단어가 얼마나 매혹적이면서도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며, 특히 톰이 그녀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면에서 이 긴장감은 극에 달합니다.
결국 변화는 도피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를 가집니다. 영화는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변화 자체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앨리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맞이하는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들을 상징합니다.
예술성과 철학이 조화를 이루는 연출
‘컴플리트 언노운’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확연히 다른 리듬과 톤을 가진 영화입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한 대화와 고요한 시선 속에서 전개되며, 인물의 감정보다는 분위기와 여운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이는 관객에게 오히려 더 깊은 몰입을 가능하게 하며, 일상의 순간들에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도록 합니다.
미장센, 색감, 조명 등 시각적 요소 역시 앨리스의 유동적인 정체성과 어우러져 상징적인 효과를 냅니다. 뉴욕이라는 도시적 배경은 변화의 역동성과 고독감을 동시에 상징하며, 인물 간의 거리감과 내면의 균열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특히 영화 중반부 밤길을 걷는 장면은, 삶이라는 여정 속에 있는 불확실성과 선택의 무게를 절묘하게 압축해 냅니다.
이런 연출은 대중성은 떨어질 수 있으나, 예술성과 철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관객에게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조슈아 마스톤 감독은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잡아내며, 영화라는 매체가 지닌 예술적 가능성을 다시금 환기시킵니다.
‘컴플리트 언노운’은 단순한 인디 드라마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나는 누구인가', '변화는 어떤 의미인가',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 물음은 곧 관객 자신에게로 향하며, 누구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보는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